2020년 5월 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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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적 입장에서 타락 전 세상을 가꾸라는 신의 명령(기독교계에서는 문화 명령 혹은 통치 헌장이라 불린다)을 잘 이행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문화와 과학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라 여겼다. 이러한 점은 중세 시대 가톨릭 수도 공동체 문화와 제세례파들과 대립되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이 17세기 과학혁명과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데에 중요한 이바지를 했다.

"오직 성경"을 강조하려면 모든 이가 글을 배워야 했고, 중세의. 우둔한 전례와 풍습에 비판적이려면 이성을 바탕으로 인문적 지식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기 때문



주께서 우리가 물리학, 변증법, 수학과 같은 학문에서 불경건한 사람들의 활동과 수고로 도움 받기를 바라시니, 값없이 베푸시는 이 하나님의 선물을 무시해서 우리의 게으름 때문에 마땅한 형벌을 받지 않도록 이 도움을 잘 활용합시다.

장 칼뱅의 기독교강요 2권 2장 16절
청교도 교육관은 이성과 논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래서 당대에는 이런 공격도 받았다고 한다. "저는 성경으로 더 충만할지 모르는 어떤 박식한 학자의 설교보다, 아무런 연구없이 그냥 성령의 활동으로 말하는 사람의 설교를 듣는 것이 더 좋습니다." [9] 이성과 믿음의 이분법적인 접근보다는 믿음이 이성을 우선하지만 이성 없이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음을 역설했다.

2.2. 교육 시설[편집]

청교도들은 지식 교육에 있어 기독교 밖의 학문을 회피했던 제세례파와 달리 기독교 외의 학문들을 포용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기본적인 교육 방침은 성서에 기반한 신앙인을 교육하는 것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서 밖의 학문들을 경시하지도 않았다. 사실 이에 영향을 받아 세워진 교육 대학들은 지금도 미국에 많이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하버드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이다. 두 대학은 네덜란드에 망명한 분리주의파[10]였던 청교도 회중교회 출신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서 설립했다. 애초에 하버드 대학교는 목사 양성 학교였지만 시간을 거듭하며 형태가 계속적으로 변했다. 뉴잉글랜드의 첫열매를 보면 하버드 대학교를 세우던 때의 증언이 생생히 녹아있다.[11]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무 탈 없이 뉴잉글랜드로 데려다 주신 뒤로, 우리는 집을 짓고, 생필품을 마련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편한 장소를 세우고, 시민정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구한 일 가운데 하나는 배움을 증진하고, 그것을 자손 대대로 물려주는 일이었습니다.

뉴잉글랜드의 첫 열매(New England's First Fruit(1643))

3. 정치관[편집]

아메리카에 사람들이 살게 된 것은 스튜어트 왕가의 혐오스러운 폭정과 세속적이고 영적인 폭정에 대한 투쟁 덕분이었다.
아메리카에서 정착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완수하도록 이끌었던것은 종교뿐만 아니라 보편적 자유에 대한 사랑, 성직자, 위계조직, 전제적 지배자들에 대한 증오와 불안, 공포 때문이기도 했다.

존 애덤스의 『교회법과 봉건법에 관한 논문』(1765)

앞서 영국의 청교도들은 스튜어트 왕가와의 정치적 이념의 차이로 100여년간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이들은 왕권신수설을 배격하고 칼뱅주의에 입각하여 통치자의 권력을 제한할것을 주장했고 이는 영국과 네덜란드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에게도 이어진다. 그리하여 미국은 건국 이전부터 청교도들의 이주로 인구적 특성이 생겨났으며, 이런 주민들이 영국정부의 식민지 압제에 벗어나 국가를 구성했고 독립혁명의 이론적 기반은 칼뱅주의에 영향받은 공화주의와 존 로크의 사회계약설에 큰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독립헌장에서부터 "모든 사람은 평등하므로 자유롭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대혁명이 국가교회인 가톨릭에 반감을 많이 드러냈다면 미국 독립혁명은 청교도 윤리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현재 세속주의에서 주장하는대로 미국 건국이념은 종교와 무관하다는 주장은 건국과 독립전쟁 당시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것으로[12] 현재 종교의 자유라는 개념이 세속화된 국가에서 어느 종교든지 믿어도 되거나 혹은 종교를 믿지않을 자유 라면 당시 17~18세기 청교도들에게 종교의 자유라면, 수정 헌법 1조에 명시 된대로 영국 국교회와 같은 국교를 두지않고, 국교와 같은 지위의 기독교 내 특정종파를 인정하기 않겠다는 취지로 보는게 합당하다. 당시 유럽은 기독교 세계였고 종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특정 교파냐 아니냐가 정치적 갈등의 주 양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청교도들의 주류는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찰스 2세의 영국국교회(성공회) 일원화 정책에 반발하여 가장 극심한 탄압을 받던 회중교회나 재세례파[13]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청교도들의 특징이라면 오히려 현대 미국 자유주의의 원류를 옅볼 수 있는데,
  • 국가교회 체제에 부정적이며 국가의 권력과 개입을 최소화한다.
  • 개인의 신앙과 양심,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고[14] 개인의 성경중심 신앙을 강조한다.
  • 자유의지를 강조하기에[15] 개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엄격하게 묻고, 따라서 금욕적인 윤리관을 갖는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개인주의, 제한된 권력, 작은 정부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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